테니 이곳에서살아라 지원 13년 3월 하순에 개경성에는 때아닌 우박이

테니 이곳에서살아라 지원 13년 3월 하순에 개경성에는 때아닌 우박이 내렸는데 어 린아이 주먹만 했으므로 왕궁의 기왓장이 모두 깨졌고 궁인 수십 명이 다쳤다 그러나 백성의 피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관 리들이 민심의 소요가두려워서 조사조차 하지 않고 덮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소문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수만 마리의 새들이 우박에 맞아죽고 들에 나갔던 농부들이 머리가 깨진 대이변 으로 민심은 흥흥해졌다 더욱이 3만 군사를 북방으로 떠나보낸 상황이다 백성들은 밤 낮으로 북방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상대가 전 진주목 방어사였으며 교정도감 김준의 심복무장이었던 후금왕 윤의충이 다 백성들의 심중은 착잡했고 그래서 수많은 근거없는 소문이 떠 돌았다 그중 가장 넓게 퍼진 소문이 몽골군이 고려군을 화살받 이로 쓴다는 것이었다 몽골군이 충주성 싸움에서 밀릴 적에 근처의 백성들을 잡아 앞세우고 공격했던 전례가 있었다 그때 수백 명의 무고한 백성이 충주성을 방어하던 고려군의 화살에 맞아죽었던 것이다 고려군이 요양성 남쪽 50여 리 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 260 대 영웅 구타이의 몽골군단이 전열을 정비한 후였다 도총관 웅구드는 달로화적 혼도의 심복무장이었으나 아구타이 를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신분이다 요양성이 다가올수록 신경 이 곤두선 그는 군사들을 다그쳐 행군을 재촉했다 장군 4일 후면 본대와 합류하게 됩니다 중랑장 김창경이 다가와 말하자 고여필은 잠자코 머리만 끄덕 였다 오시오전 11시 무렵이다 수레 3천 대를 이끈 고려군은 잡 초가 우거진 황야를 횡단하는 중이었다 김창경이 말고비를 채어 그에게로 바짝 붙었다 깅를께서 죄를 받고 끝내실 일이 아니올시다 남은 3만 군사는 어찌됩니까 이미 군사들에게는 고려군이 화살받이로 쓰인다는 소문이 퍼 져 있소이다 그렇게 되면 소문대로 되지 않겠소이까 고여필은 앞쪽을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3천 대의 수레에 실린 4만 석의 양곡에서 이미 6천 석이 비워졌다 4일 후에 본대 에 랄으면 곧 점검이 있을 것이고 책임자는 군법으로 참형될 것 이었다 김창경이 얼굴을 굳히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장군소장이 양곡을 퍼낸 다음 날에 심복교위 하나에게 밀서 를 들려 후금왕께 보냈소이다 놀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제시카 티파니 2차디스 ㅋㅋㅋㅋㅋ